게으름, 자존심, 핑계에 관한 글
- 좋은글
- 2021. 5. 4. 07:53
<게으름, 자존심, 핑계에 관한 글>
나는 시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 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 산월기
나카시마 아쓰시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
젊은 나이에 수재라는 칭송을 받던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향상심의 소유자인 동시에
옹고집에 게으르며 자존심 강한 성격탓에 미쳐버리고,
결국에는 식인 호랑이로 변한다.
그 후 옛 벗을 만나 자아를 되찾은 주인공은
자신이 발광한 원인에 대해서 깨닫는다.
<"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탓이라.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이 방해를 하는 통에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필사적으로 훈련에 몰두하자니
자존심이 이를 수치로 여겨 허용치 않는다. >
말을 마친 주인공이 슬픔에 울부짖으나,
그저 짐승의 울음소리였을 뿐이었다